이야기가 우리를 부를 때 — 미하엘 엔데 『끝없는 이야기』 ①

북클럽이 가진 여러 매력 중 하나는, 나의 취향과 익숙한 테두리를 뛰어넘어 전혀 새로운 작가와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번 9월의 책이었던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The Neverending Story)』 역시 그랬다. 이 책은 우리 북클럽의 보물인, 아이들을 가르치시며 어린이와 청소년 문학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양혜경 선생님의 추천이었다. 

홍콩에서 두바이로 돌아와 9월 북클럽 모임까지 남은 시간은 2주 남짓. 두바이에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아마존에서 영문판을 주문했는데 도착한 택배 상자를 뜯어보니 생각보다 두툼한 책이 들어 있었다. 아이 방학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 하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판타지 소설로, 무거운 두께에도 불구하고 부담 없이 술술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모처럼 엄마가 읽고 있는 책에 관해 아이에게 들려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자연스럽게 '북클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가며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하고, 다 읽은 뒤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눈다는 말도 해주었다. 덕분에 눈을 반짝이는 일곱 살 아이와 나름대로 흥미롭고 유익한 대화를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갈 수 있었다.

처음으로 Across Cities 온라인 북클럽을 해보기로 결정한 8월 말. 두바이에서, 뉴욕에서, 홍콩에서 함께 같은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카톡방에 각자의 책 사진을 찍어 올리고 이런 저런 질문을 주고받는 짧은 대화만으로도, 마른 땅에 새싹이 움트듯 내 마음에는 기분 좋은 봄이 심겼다. 그렇게 9월 북클럽 날. 홍콩에서는 아침 10시에 홍콩한인교회 7층 카페에 모여 향기로운 커피와 함께 3시간의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고, 온라인에서는 홍콩 시간 밤 10시 (뉴욕 아침 10시, 두바이 저녁 6시)에 맞춰 각자의 도시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했다. 화면 너머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3시간을 꽉 채워 이어졌다. 마치 낮과 밤의 대칭처럼, 혹은 우리가 이번에 함께 읽은 『끝없는 이야기(The Neverending Story)』 속 두 세계처럼. 우리는 서로의 삶에서 이 북클럽이라는 작은 공동체가, 이 느슨하고도 단단한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마치 사랑을 고백하듯 담백히 나누었다. 실은 이렇게 다시 연결될 수 있을거라 생각 못했는데, 멀리 떨어져있어도 어쩐지 우리 마음 속 씨앗엔 달디단 단비가 듬뿍 부어졌다.

북클럽을 하며 늘 새삼스레 깨닫는 사실은, 같은 책을 펼쳐도 활자 너머에서 끌어오는 의미와 해석의 관점은 저마다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양혜경 선생님이 나누어 주셨듯 독서 전문가는 ‘독서’의 메커니즘으로, 심리학자는 ‘융의 분석심리학’이라는 렌즈로 이 텍스트를 이해한다. 굳이 전문가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이 소설에서 ‘기억’이라는 화두를 오래도록 붙잡았고, 또 누군가는 ‘소원’과 ‘욕망’의 무게에 마음을 기대었다. 그리고 나는, 첫 장을 열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내내 ‘이야기(Story)’라는 주제에 깊이 골몰하며 읽었다. ‘이야기(Story)’란 과연 무엇일까. 이 소설을 지탱하는 중심축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요즘의 내가 고민하던 관심사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자꾸만 맴돌던 질문과 완벽하게 조응하는 책이 마치 거짓말처럼 눈앞에 짠하고 나타났을 때 느끼는 벅찬 경이로움. 살아가다 보면 종종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을 겪게 된다. ‘아, 이 책이 내게로 왔구나’ 하고 직감하게 되는 순간 말이다.


1929년에 태어난 독일의 국민작가 미하엘 엔데. 우리에게는 『모모』라는 책의 작가로 잘 알려진 이름이다. 초현실주의 화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영향 때문일까. 1979년에 발표된 이 책 『끝없는 이야기』는 ‘상상력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쓰인 작품이었다. 언젠가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 한번 읽혀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마치 거울처럼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세계’, ‘서로의 꼬리를 무는 두 마리의 뱀’처럼 두 축으로 대칭을 이룬다. 절반을 뚝 떼어 파트 1이라 부를 수 있는 1장부터 12장까지는 ‘아트레유’라는 주인공의 모험을, 그 이후 파트 2라고 할 수 있는 13장부터 마지막 26장까지는 또 다른 주인공 ‘바스티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아트레유와 바스티안은 마치 거울 속 비친 서로의 모습 같다. 아트레유는 ‘판타스티카(Fantastica)’라는 환상의 세계에 사는 열 살 소년이고, 바스티안은 ‘현실(Reality)’ 세계에 사는 열 살 소년이다. 참고로 한국어판에서는 이 환상의 세계를 독일어 원어를 살려 ‘판타지엔(Phantasien)’이라 번역했다고 들었지만, 나는 이번에 영문판을 읽은 호흡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판타스티카’를 비롯해 내가 직관적으로 해석한 영어 명칭들을 섞어 써보려 한다.

편의상 파트 1이라 부를 수 있는 전반부는 우리에게 익숙한 고대의 영웅 서사시를 닮아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나 『길가메시 서사시』처럼 말이다. 전사로 길러진 소년 아트레유는 처음부터 흔들림 없이 용감하고, 강인하며, 고대의 영웅들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그에게는 세계의 존망이 달린 막중한 임무가 주어진다. 판타스티카의 생명 그 자체인 ‘어린 여왕(Childlike Empress)’이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그녀의 죽음은 곧 판타스티카의 소멸을 뜻한다. 세계 곳곳을 집어삼키는 ‘아무것도 아닌 것(The Nothing)’이라는 끔찍한 역병 속에서, 아트레유는 반드시 여왕을 살려낼 해답을 찾아내야만 한다.

고전적 영웅의 모습을 한 용맹한 아트레유는 험난한 세계를 뚫고 나간다. 늙은 모를라에게서 실마리를 얻고, 깊은 협곡에서 끔찍한 이그라물과 맞닥뜨리며, 요정 학자 ‘엥기부크’를 만나고, 남쪽 신탁에 닿기 위해 목숨을 걸고 세 개의 기이한 문을 통과한다. 그렇게 세계의 끝에서 끝까지 내달린 끝에, 오직 노래하는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우율랄라’에게까지 이른다.

내 시선을 붙잡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긴 여정의 끝에서부터였다. 사명과 임무 완수를 향해 쉼 없이 달려온 영웅 아트레유가 마침내 자신의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그토록 먼 길을 돌아 알아낸 것은 뜻밖에도 판타스티카 안에는 이 세계를 구원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세계는 ‘세계 밖’의 존재에 의해서만 살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바깥 세계로 나갈 수 없는 아트레유로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길고 긴 순례의 끝에서 그는 결국 ‘나의 힘만으로는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없다’는 한계와 마주하고 절망한다.

아트레유는 주어진 임무에 실패했다는 짙은 수치심과 절망감을 무겁게 짊어진 채 어린 여왕 앞에 선다. 하지만 소멸해가며 투명해지던 어린 여왕은 오히려 아트레유를 향해 ‘너는 임무를 완벽히 성공해 냈다’고 미소 짓는다. 애초에 아트레유에게 주어진 진짜 임무는 치료법을 찾아 세계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 여왕은 이 세계 안에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아트레유의 진짜 임무는 바로 스스로 하나의 ‘긴 이야기(Long story)’가 되는 일이었던 것. 판타스티카를 구할 수 있는 바깥 존재를 이 세계로 기꺼이 초대할, 아름답고 용기 있는 모험과 여정의 이야기 그 자체가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아트레유는 자신도 모르는 동안, 바깥 세계와 연결된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있었고, 두 세계를 이어 바깥 존재를 어린 여왕 앞으로까지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아트레유는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운명의 짐을 전부 내려놓는다. 구원자는 자신이 아니라 바깥 세계에 있다는 것이 아트레유를 안심시켰다. 어린 여왕은 아름다운 모험을 하여 기꺼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준 아트레유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한다. “오직 모험과 경이로움, 그리고 위험으로 가득 찬 기나긴 이야기만이 바깥의 존재를 내게로 이끌 수 있었지. 그리고 그것이 바로 너의 이야기였단다.” 그리고 아트레유는 모험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이 세계를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근심과 책임감에서 벗어나 아주 깊고 평온하게, 달디단 단잠에 빠져든다.

전반부는 판타스티카(이야기)와 인간 세계(현실)의 긴밀한 대칭 구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판타스티카를 무자비하게 집어삼키는 ‘아무것도 아닌 것(The Nothing)’은 곧 이야기 자체의 끔찍한 소멸을 뜻했다. 본래 ‘이야기’의 건강한 역할은, 상상력을 통해 우리가 딛고 선 현실 너머의 가능성과 희망을 유연하게 직시하도록 돕는 데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에 휩쓸려 현실로 떨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은 ‘거짓(Lies)’으로 부패해 버린다. 이 부패한 거짓은 인간의 눈을 가려 현실을 왜곡한다. 헛된 것을 욕망하게 하고 깊은 절망과 두려움을 심어, 인간을 쉽게 조종당하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무서운 것은 이 거짓이 다시 인간과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끊어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더욱 팽창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판타스티카의 멸망은 단순한 동화 속 비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상력을 잃은 인간이 ‘왜곡된 현실’이라는 감옥에 영원히 갇혀버리고 마는 비극이기도 했다.

이제 이야기는 2부로 넘어가며, 운명의 바통은 현실의 소년 바스티안에게로 건너간다. 바스티안은 낡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즉 우리가 읽고 있는 소설과 똑같은 제목의 『끝없는 이야기』를 읽고 있는 ‘현실’ 세계 속 독자다. 바스티안은 아트레유와 많은 면에서 반대인 아이다. 바스티안은 겁이 많고, 외모에 자신이 없고, 약하고 외톨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 학교 생활도 원활하지 못하고, 엄마를 잃은 뒤 아빠와의 관계마저 서먹해져, 깊은 결핍과 외로움 속에 웅크러든 소년이다.

바스티안은 학교 다락방에 숨어 『끝없는 이야기』를 읽으며, 멸망의 위기에 처한 판타스티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모험하는 아트레유의 아름다운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간다. 그렇게 아트레유의 이야기에 이끌려 어린 여왕 앞에 이르자, 정말 신비하고 기묘한 일이 발생한다. 어린 여왕이 애타게 기다려온 바깥 존재가 다름 아닌 지금 이 순간 책을 읽고 있는 바스티안, 그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 순간 이야기는 처음으로 책 밖을 향해 말을 건넨다. 바스티안, 바로 네가 이 이야기에 필요하다고.

어린 여왕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음에도, 바스티안은 좀처럼 책 속으로 발을 내딛지 못한다. 나중에 어린 여왕이 바스티안에게 “왜 이렇게 날 오래 기다리게 했어?”라고 물었을 때 바스티안의 대답 가장 깊은 곳에는 결국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스티안이 해야 하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이 세계를 믿고, 어린 여왕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바스티안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바스티안은 자신이 생각한 이름이 정답이 아닐까 봐, 어린 여왕이 초라한 현실의 자신을 보고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바스티안이 끝내 망설이자, 어린 여왕은 마지막 수단으로 판타스티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에 기록하고 있는 노인을 찾아간다. 어린 여왕이 그에게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달라고 청하자, 노인은 이야기의 맨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바스티안이라는 한 소년이 서점에 들어오고, 그곳에서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을 발견해 들고 나와 학교 다락방에 숨어 읽기 시작하는 바로 그 현실의 장면으로. 그러니까 바스티안은 자신이 쥐고 읽고 있는 책 속에서,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을 활자로 목격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바스티안은 자신이 완벽하게 이야기의 ‘바깥’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책이 돌연 입을 열어 바깥에 선 독자의 이야기를 서술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이야기를 읽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나 자신이 이미 이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였다니.

실은 내게도 이와 닮은,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경험이 딱 한 번 있었다. 오래전, 성경의 『로마서』를 읽어 내려가던 어느 날의 기억이다. 그때의 나는 다락방에 숨어든 바스티안과 닮은 점이 많았다. 그렇게 책을 읽다가 문득, 정말로 불현듯, 수천 년 전 ‘바울’이라는 저자가 부르짖어 말하는 그 ‘이방인’이 까마득한 로마 제국 시대의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사실이 날벼락처럼 다가왔다. 지금 이 오래된 텍스트가, 거짓말처럼 내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그러자 그가 말하는 구원도 더 이상 타인의 것이 아닌 게 되었다. 예수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졌다는 문장의 ‘우리’라는 단어 안에, 놀랍게도 웅크려 있던 내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천 년도 더 된 아득하고 오래된 이야기 속 저자가 지금 내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나는 이 이야기 속 살아 숨 쉬는 일부라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정말 이상하고도 신비롭게, 그 순간 내가 바라보던 세상은 뿌연 장막을 걷어낸 듯, 몹시 깨끗하고 밝은 렌즈를 끼워 넣은 것처럼 눈부시고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한참 후에야 그 경험이 ‘회심’이라는 단어로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끝없는 이야기』를 읽으며 새삼 이렇게 설명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새로운 교리나 진리를 깨닫게 된 순간이라기보다, 내가 비로소 그 오래된 ‘이야기의 일부’임을 알아차린 순간이었다고.

결국 바스티안은 용기를 내어 어린 여왕에게 새 이름을 외쳐 불러준다. 덕분에 소멸해가던 어린 여왕과 판타스티카는 다시 부활하듯 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바스티안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멋지고 용감한 왕자가 되어야 이 세계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어린 여왕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트레유의 이야기에 이끌려 그 이야기를 사랑하게 되고, 기꺼이 이 세계를 믿고 들어와줄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 어린 여왕은 바스티안에게 “DO WHAT YOU WISH.”라는 말과 함께, 소원하는 모든 것이 판타스티카의 현실로 이루어지는 힘을 선물한다.

[2부에서 계속]

Monica Seokin Lee 이석인

Writer · Wine Expert · Dubai

『포도에서 와인으로』, 『포도빛 바람이 불어오는 곳, 부르고뉴』를 썼다. WSET Diploma를 취득했다. 서울과 싱가포르, 홍콩을 거쳐 두바이에 살며, 책과 와인, 예술과 도시를 읽고 그 사이에서 발견한 것들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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