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주나무, 다시 시작되는 자리

노간주 나무(Juniper)와 열매

노간주나무(Juniper)는 척박하고 건조한 땅에서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상록 침엽수다. 바늘처럼 뾰족한 잎은 가까이 다가가면 따갑지만, 가지 사이로 향기로운 푸른 열매 같은 구과를 맺는다.

독일의 전통 동화이자 그림 형제의 이야기로 잘 알려진 『노간주나무(The Juniper Tree)』에서 이 나무는 죽음을 넘어선 부활과 왜곡된 진실의 회복을 상징한다. 계모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어린 아들의 뼈는 마당의 노간주나무 아래 묻히게 되는데,이 마법 같은 나무의 뿌리 속에서 아이의 영혼은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세상 밖으로 날아오른다. 동화 속 노간주나무는 잔혹한 범죄로 찢겨 나간 비극을 묵묵히 품어 안고, 끝내 진실을 밝혀내며 생명을 원래의 온전한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강력한 재생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미하엘 엔데의 판타지 소설 『끝없는 이야기』에서도 노간주나무는 혼란의 시기를 벗어나 내면의 진짜 빛을 발견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바스티안이 환상세계에서 거친 풍파를 겪은 후, 제23장 초반에 말에서 떨어져 눈을 뜬 곳이 바로 노간주나무 덤불 한가운데다. 덤불 속에서 정신을 차린 바스티안은 자신이 타고 온 화려한 금속의 말이 속이 텅 빈 가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또한 자신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주던 투명 벨트 ‘겜멜’이 노간주나무 가지에 걸려 떨어지자 이를 미련 없이 던져 버린다. 비록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막막한 상태였지만, 바스티안은 덤불에서 기어나와 저 멀리 떠오르는 태양을 방향 삼아 걷기 시작한다. 거짓된 권력과 가짜 빛을 상징하던 반짝이는 것들을 하나씩 버리고, 세상의 진짜 빛을 향해 본질적인 걸음을 내딛는 출발점에 바로 이 노간주나무 덤불이 있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문학 속에서 재생과 회복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온 노간주나무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일상에서도 ‘주니퍼베리 에센셜 오일’이라는 형태로 그 쓰임새를 이어가고 있다. 정화와 해독 작용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노간주나무 열매 추출물은 몸의 독소 배출과 피로 회복에 도움을 주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로에 시달리는 이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데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동화 속 상처받은 영혼과 길을 잃었던 소년을 품어주었던 노간주나무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나면, 현대에 이르러서도 지친 인류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향기로운 처방전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Claire Joomyung Lee 이주명

Book Curator · New York
Orchard’s unofficial Tree Lady 🌳
책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북 큐레이터 이주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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