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밤, 『인간의 대지』

두바이에 와서 이제 조금 친해진 분들께—대개 10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 이곳에 살아온 가족들에게—"보통 주말엔 뭘 하세요?" 하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사막에 가요."

열 명 중 열 번째 대답을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다. 사막에 뭐가 있나요? 사막에 왜 가시나요? 내게 그 대답은, 10년 넘게 홍콩에 살았던 내게 누군가 일상을 물었을 때 "바다에 가요"라고 답하는 것과 똑같은 무게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랬다. 나는 홍콩의 바다를 너무도 사랑했다.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홍콩의 바다는 내게 고향 같은 곳이었다.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곳, 온전히 쉴 수 있는 곳. 

무엇보다 바다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파도 소리를 쉼 없이 들려주었다.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릿속 온갖 소란이 잦아들었다. 멀리서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 아이들이 까르르 뛰노는 소리, 이따금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까지. 코끝을 스치는 짭조름한 바다 냄새를 맡으며 모래사장에 앉아 책을 읽다 보면 어느덧 붉은 노을이 졌다. 그럼 찰랑이는 바닷물에 휘휘 다리를 씻어내고, 어스름한 노을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저녁 식사를 했다. 때때로 우리는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짙푸른 바다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바다 수영을 즐겼다. 

바다는 또한 내 일상이기도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각기 다른 선사의 이름을 단 알록달록한 화물선들이 지나갈 때면, 나는 그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그들은 어디에서 돌아오는 길일까? 어디를 향해 가는 중일까? 어떤 여행과 모험을 하는 중일까? 하얀 물살을 가르는 날렵한 제트보트, 파도에 흔들리는 아주 작은 고무보트, 홀로 노를 저어가는 작은 카누, 그리고 어딘가 허술하고 낭만적인 해적선 모양의 배들까지.

그러니 “사막이 좋아요? 거길 왜 가세요?”라는 나의 질문에 다들 “사막이 제일 마음이 편해요”라고 답할 때마다, 내게 그 말은 도무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같았다. 사막엔 대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있는 걸까.

그러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읽으며 문득 마음이 멈춰 섰다. 

그랬지, 생텍쥐페리는 사막에서 3년을 일했고, 사막 한가운데서 조난을 당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적도 있었지. 그리고 그 시간을 이 책에 적어 내려갔지. 오래전 『인간의 대지』를 처음 읽었을 때는 ‘사막’이라는 공간이 마음에 와닿지 않아 그 대목들이 그리 깊은 인상으로 남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가, 휴가차 찾은 라스알카이마의 알 와디(Al Wadi) 사막 한복판에서 바로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었다.

맙소사. 아주 오래전 아버지의 서재 책상에 앉아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언젠가 내가 진짜 사막 한가운데 앉아 이 글들을 다시 마주하게 될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북클럽의 다음 책으로 문득 생텍쥐페리가 떠올라 추천했을 때도, 이번 휴가지로 사막 호텔을 택하고 이 책을 가방에 넣었을 때도, 나는 이 책에 사막 이야기가 그토록 많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을 미리 계획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 사막이 텅 비고, 침묵으로만 느껴진다면, 그것은 사막이 잠시 사랑하다 떠날 연인들에게는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네 나라에 있는 작은 마을조차 낯선 이에게는 쉬이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다. 그곳을 위해 나머지 세상을 기꺼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곳의 전통과 관습, 사람들 사이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고향인 그 땅의 진정한 모습을 끝내 보지 못할 것이다.”

당시 생텍쥐페리가 마주한 사막은 지금의 내게 다가온 사막보다 훨씬 더 낯설고 두려운 미지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아아, 그렇게 나보다 훨씬 앞서 그 막막함을 살아본 그가 백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내게 조언을 건네고 있었다.

영문판에서는 renounce라는 단호한 단어까지 사용했다. 그곳을 위해 나머지 세상을 기꺼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금방 떠나버릴 가벼운 연인처럼 군다면, 사막은 영영 내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그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군. 생텍쥐페리 역시 새로운 연인인 사막 앞에서 전 연인인 세상을 온전히 놓지 못해 꽤나 애를 먹었나 보군. 사막 한가운데 앉아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으니, 사막이 내게 문을 열어주고 속내를 내비칠 리 만무했다. 

『인간의 대지』의 영문판 제목은 『Wind, Sand and Stars (바람과 모래와 별들)』이다. 그는 사막을 두고 '바람과 별의 고향'이라 불렀다. 사막에는 온통 모래와 하늘뿐이다. 시야를 가리는 다른 것들이 없기에 하늘이 참 잘 보인다. 모래 언덕이 끝없이 이어지는 곳에서는 익숙한 이정표를 찾기 어렵다. 낮 동안 눈에 띄던 흔적마저 바람이 지워버리고 나면, 방향과 시간을 가늠할 단서가 더욱 희미해진다. 그러니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별을 본다. 사막에서는 별이 곧 시간이고, 공간이다. 별을 보며 방향을 잡고, 별을 보며 시간을 읽고, 별의 궤적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밑의 길은 보이지 않아도, 고개를 들면 여전히 길을 가리키는 빛이 있다는 것. 그러니 이곳은 별의 고향임이 틀림없다. 밤이 되면 하늘의 별들을 이불처럼 덮고 잠드는 곳.

동시에 이곳은 바람의 고향이기도 하다. 사막은 때때로 완벽한 정적에 잠긴 듯하다. 귀를 기울여도 어느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 순간, 비로소 바람의 움직임이 선명해진다. 바람이 불어야만 우리는 그 바람의 소리를 듣고, 바람이 지나가야만 모래의 형태가 변하는 것을 본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분명 이전과 다른 풍경이 남는다. 언제 우리가 사막이 아닌 곳에서, 바람의 존재를 이토록 온전히 느끼고 별이 가리키는 길을 이토록 절실하게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고독을 안다. 3년 동안 사막에서 산 덕분에 나는 그 맛을 잘 안다.”

생텍쥐페리의 말이 맞다. 사막은 고독의 공간이다. 사막에는 내 마음을 만져주는 따뜻한 파도 소리가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고요 덕분에, 밖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작고 깊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소리가 없고 인기척이 드물기에, 모래 언덕 너머에서 마주치는 누군가의 존재는 참으로 귀해진다. 작은 기쁨 하나, 소박한 행복 하나가 사막의 텅 빈 공간을 꽉 채울 만큼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니 사막에서는 누군가의 존재가, 작은 친절 하나가,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따뜻하게 다가온다. 사막의 밤, 모닥불처럼. 아아, 사막에는 모닥불 타는 소리가 있겠구나. 별들만이 시리도록 반짝이는 차가운 하늘 아래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과 그 곁에 나란히 앉은 당신의 온기가 이 텅 빈 사막에서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겠지.

“이곳에는 그저 모험이 있을 뿐이고, 삶의 본질은 자신이 떠나온 저편에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이제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이 진정한 풍요를 누렸던 곳은 오직 이곳, 사막뿐이었다는 사실을. 사막의 밤이 지닌 이 찬란함, 이 침묵, 바람과 별들의 고향.”

‘사막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풍요’라는 생텍쥐페리의 문장과, ‘좋은 의미에서 조금 더 외로워지는 것’이라는 누군가가 전해준 아름다운 문장을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쓰다듬어 본다. 그리고 주명 언니가 내게 건네준 말도 떠올랐다. 바다와 사막은 어쩌면 아주 비슷한 공간일지도 모르겠다고. 정말 그런가.

사막에선 도무지 힘을 쓸 곳이 사라진다. 지도도, 나침반도, 치밀한 계획도 소용이 없어져. 그저 어둠 속에서 별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은은한 달빛이 발밑의 길을 밝혀주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는 걷고 또 걷다가, 우연히 우물을 만나고, 기적처럼 오아시스에 닿으며, 모래바람 사이로 작은 덤불과 커다란 야자수를 발견해 낼 따름이다.

그러고 보면 바다에서도 두 팔을 저어 힘껏 헤엄쳐야 할 때가 있지만, 때로는 두 귀가 물에 푹 잠기도록 바다의 너른 품에 온몸을 맡기고, 두 눈을 감고 물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떠 있어야 할 때가 있더랬지. 어쩌면 비슷한 느낌인 걸까.

그날, 사막의 밤은 길었다. 나는 이내 잠들려는 노력을 포기한 채 커다란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까만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사막 한가운데, 정말이지 티끌만 한 소리조차 허락되지 않던 그 정적의 밤. 오직 나의 옅은 숨소리와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들만이 고요하게 내게 말을 건네오던 밤.

벌써 그 적막한 사막의 밤이 그리워지는 걸 보면, 어쩌면 사막은 이미 나를 품어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나를, 잠시 사랑하다 떠나버릴 연인이 아니라고 먼저 말없이 믿어주었던 것인지도 모르지.

그러니 이제는 나도, 그가 아직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들을 조금은 더 가까이 듣고 싶어졌다고.

Monica Seokin Lee 이석인

Writer · Wine Expert · Dubai

『포도에서 와인으로』, 『포도빛 바람이 불어오는 곳, 부르고뉴』를 썼다. WSET Diploma를 취득했다. 서울과 싱가포르, 홍콩을 거쳐 두바이에 살며, 책과 와인, 예술과 도시를 읽고 그 사이에서 발견한 것들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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