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점들을 연결하며
언제부터였을까? 책을 가상 공간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한 것이.
난 어릴 때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섯 살 많은 오빠가 자신의 취향대로 사놓은 책들과 친구의 부탁으로 아버지가 사놓으신, 표지가 매우 고전적인 한국문학전집과 세계문학전집이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손이 가질 않았다. 원하는 책을 읽으려면 멀리 떨어진 구립도서관을 찾아가거나 새로 사야 했는데, “집에 있는 책부터 읽어”라는 어머니의 불호령에 책과 친숙해지지 못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접한 글들은 시험을 위한 것이었고, 읽고 나면 주제가 무엇인지, 글쓴이의 의도는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그것은 아마도 다 핑계일 테고…… 그저 언제든 그 모양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집에서 버림받은 피아노에 매달려 이렇게 저렇게 소리를 내보며, 그때마다 달라지는 소리에 기뻐하며 놀았다. 성장하면서도 세상이 보여주는 색과 맛, 그리고 그 다양한 시끌벅적함이 난 참 좋았다. 세상이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 같았고, 그저 신나기만 했던 시간을 지나 어른이 되었고, 나의 반쪽이라는 사람을 만나 어느 날 아이도 낳게 되었다.
아침잠이 많아 아침에 눈뜨는 순간을 빼고는 세상 모든 것이 좋았던 나에게 신생아와의 생활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타지에서의 육아란 나 혼자만의 싸움 같았고,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중이었기에 체력도 많이 소진되어 있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에너지조차 남지 않아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하던 중, ‘책을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결혼할 때 내 방에서 가지고 온 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밖에 없었지만, 남편은 모든 공상과학 소설의 시조새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다 가지고 왔다. 마침 당시 영화화되어 많은 인기를 끌던 『반지의 제왕』을 집어 들었다. ‘뭐 재미가 있겠어?’ 하고 기대도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흥미진진했고, 난 그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내 현실이 재미없어서 책의 세계로 날아갔고, 날마다 모든 일과가 끝난 늦은 밤에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맛있는 치킨을 먹듯 그렇게 뒤늦게 책과 친구가 되었다.
그 이후로 난 책을 고를 때 두껍고 내용이 긴 소설을 골랐다. 확실한 현실 도피를 원했기 때문에 나와 먼 나라, 먼 시기의 작품 혹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상상 속의 이야기가 참 좋았다. 『왕좌의 게임』, 『영웅문』, 『토지』, 『삼국지』 등등. 1권을 시작할 때 쌓여 있는 남은 권수를 보면 행복했고,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불안해서 바로 다음에 이어 읽을 책을 줄 세워놓았다.
그렇게 무작정 달리다가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책을 읽다 보면 글이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책에 나온 구절이나 내 생각을 써보기도 했다. 잘 알지 못하는 원어를 찾아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무작정 그려(?)보기도 했고, 책에 나오는 음식을 만들어보고 음악도 들어보고, 어떤 계절이 오면 꼭 그 책을 읽어야만 하는 신기한 버릇도 생겼다. 나에게 책은 더 이상 활자가 적혀 있는 종이 덩어리가 아니었다.
한번은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로마 지도를 그려보고 연도별로 왕과 사건을 정리하다가, 그 시대에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 맘대로 역사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어떤 역사적 사실 하나를 찾다 보면 돌고 돌아 원래 지점으로 오기까지 며칠이 걸릴 때도 있었다. 로마 건축에 관한 책도 읽고, 그냥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게 많아져서 한 권의 노트가 다 찼을 무렵 난 로마로 혼자 날아갔다.
내가 그리고 오려 붙인 지도와 자료만을 가지고 한없이 자유롭게 다니며, 배고프면 아무 데서나 철퍼덕 앉아서 파니니를 먹었다. 한밤중에는 나보나 광장에 나와 발아래 깔려 있을 황제의 경기장을 마음껏 상상하며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온전히 그 시간을 즐겼다. 비행기에서도 영어가 유창한 승무원에게 굳이 ‘와인 한 잔만 주세요’를 이탈리아어로 주문해 보겠다며 주책을 부렸고, 테스타치오 시장에서 파는 ‘카르초피 알라 주디아’(Carciofi alla Giudia, 아티초크 튀김)를 먹어본다며 철도 아닌 음식을 기를 쓰고 찾아갔다.
가만히 앉아서 읽기만 하는 것이 독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책은 나를 일어나 걷고 뛰게 만들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갈 수가 없었고, 머리에는 물음표가 가득 찼으며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이때쯤 나의 독서 노트는 점점 방대해졌다. 플래너와 일기도 관리하던 나는 끄적거려야 할 것들이 많아지면서 커먼플레이스 노트¹를 마련했고, 내 삶을 유연하게 기록하고 관리해 주는 불렛 저널²로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¹ 커먼플레이스 노트(Commonplace Notebook): 책에서 발견한 문장과 지식, 생각과 아이디어 등을 한곳에 수집하고 연결해 기록하는 오래된 노트 방식. ² 불렛 저널(Bullet Journal): 짧은 문장과 기호를 활용해 일정, 할 일, 생각과 기록 등을 한 권의 노트에서 관리하는 기록 방식.
빈 종이에 점과 점들을 이어 선을 그어 나가며 형태를 만들었다. 그 안에 그동안 감동적이라고 생각해 따라 써온 책의 구절, 나의 생각, 일기, 독후감과 무작정 그려본 그림, 각종 도표나 지도들이 한곳에 모여 한 달 한 달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노라면, 웬일인지 이 노트가 태어나서 뭐 하나 진득하게 집중한 적 없었던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노트 위에 채워진 그 흔적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해 그들과 내가 연결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멀리 떨어진 공간의 점을 이어 수평선을 만들고, 서로 다른 시대의 점을 이어 수직선을 만드는 작업은 세계의 주요 도시나 역사책에 나오는 굵직한 사건들로만 가능한 줄 알았다. 그러나 내게 그저 건조한 데이터에 불과했던 역사와 소설 속에서 책을 통해 마주한 것은, 흐릿하기는 해도 분명히 존재하는 작은 점들과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었다.
그 흔적들 속에는 평생 상류사회의 화려함만을 신봉했으면서도 죽기 직전 주교의 기도를 받으며, 천국에서도 자신은 당연히 상류층 대접을 받을 거라 믿고 흡족해하던 『면도날』의 엘리엇 같은 위선 없는 천진함이 있다. 혹은 『금각사』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뒤틀림에 기묘한 자부심을 느끼는 모순된 내면도 있다. 인류를 구원할 영웅이 아니라며 겁에 질려 도망치려 했던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주인공이나, 격변하는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저 눈앞의 아이를 따뜻하게 챙기던 『모스크바의 신사』 속 수선실의 마리나 같은 삶도 그곳에 있다. 더 나아가 바다에 번진 참혹한 비극 때문에 부모 형제의 살점을 먹고 자랐을 물고기를 평생 입에 대지 못하는 『작별하지 않는다』 속 생존자들처럼, 도저히 씻어낼 수 없는 슬픔을 묵묵히 짊어진 이들의 흔적도 있다.
지금 내가 다니는 길은 현대 기술로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이지만, 예전에 수레나 마차가 지나갔을 그 자리에도 각자의 약점과 욕망,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상흔을 안은 채 오늘 하루를 견뎌냈을 평범한 이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내 걱정과 고통이 아무리 거대할지언정 앞서 세상을 살았던 이들 중 누군가는 이미 겪었을 아픔일 것이며, 내가 느낀 환희 역시 수많은 이들이 거쳐 간 삶의 기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고,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들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언젠가 이 점들을 연결하다 보면, 내 안의 공허함에 대한 몸부림 또한 그 거대한 빈 공간을 채우는 하나의 점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내 삶에서 책은 이토록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탓인지 나는 아직 노련한 독서가가 되지 못했다. 중요한 대목을 놓치기도 하고, 특정 인물에게 과하게 몰입해 내 멋대로 줄거리를 오해하기도 한다. 남들은 다 읽었을 법한 고전도 모르는 게 태반이며, 분명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도 돌아서면 줄거리가 흐릿해지곤 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면 누구든 붙잡고 밤새도록 떠들고 싶어지는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와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열망만큼은 선명했다. 마침 뜻이 맞는 석인 씨를 만났고, 그렇게 우리의 두 점이 이어지며 북클럽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회원들이 늘어났고, 이제 우리는 각자의 점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들을 나눈다. 책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깊은 이해를 가진 회원들의 해석을 들을 때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시선이 너무 흥미로워 숨을 죽인 채 경청하게 된다. 어떤 날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정신을 놓기도 하고, 혼자 흥분해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억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의견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책 속 인물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때로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속마음을 자연스럽게 털어놓게 되기도 했다.
어느덧 2년이 넘은 북클럽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그 사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배웠고, 오랫동안 한쪽으로 치우쳐 굳어 있던 생각들도 중립의 균형을 찾아갔다. 이제는 내가 그리 비관적인 사람도, 타인과의 관계를 무작정 힘들어하는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누구보다 인간에게 관심이 많아서, 이 흩어진 점과 점들을 연결하는 행위 자체를 온 마음으로 즐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이 깊어질수록 이제는 책 너머에 있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리를 함께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의 의견이 더 궁금해진다. 재미있게 읽었는지, 어느 부분이, 그러니까 몇 페이지 어디가, 어떤 단어가 어떤 이유로 마음에 남았는지 조금 더 자세히 묻고 싶어진다. 책보다 책을 읽고 말하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다른 기관이나 세계 유명 대학이 내놓는 ‘읽어야 하는 책 100권’도 멋지지만, 회원들이 같이 읽자고 올려주는 리스트가 더 흥분된다.
그리하여 독서란, 노트 안에서 점을 찍듯 혼자만의 책 읽기를 마친 후 마침내 진짜 사람들과 웃으며 연결되는 커다란 즐거움으로 완성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북클럽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이달의 책을 밤새워 읽고,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준비하여 같은 장소로 달려가는 그 기적 같은 공간과 시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책과 삶의 연결,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다정한 연결을 마주할 때면, 나는 비로소 책이라는 가상 공간에서 기쁘게 걸어 나와 나의 진짜 삶을 살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