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화과나무 아래 앉았다

언젠가 꿈을 꿨다. 아주 먼 시간, 언젠가의 일이다. 꿈을 꾸긴 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꿈이었다고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를, 다만 생생한 오랜 기억.

나는 그 꿈속에서 배를 타고 낯선 항구에 닿아 닻을 내렸다. 배에서 걸어 나오자 눈앞엔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지의 땅이 펼쳐져 있었다. 눈이 아프도록 눈부신, 피부를 바싹 태워버릴 듯 내리꽂히는 햇빛. 눈가에 손차양을 만들어 겨우 앞을 내다보았지만 사방은 그저 황량하기만 했다. 이토록 뜨거운 열기와 빛의 폭우 속에서 도대체 어디로 걸음을 옮겨야 할지, 막막함이 밀려왔다.

그때, 저 멀리 아스라이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아! 저기로 가야겠다.’

순간 마음속으로 탁, 손뼉을 쳤다. 저기로 가면 되겠구나. 저곳에 가면 목을 축일 물도, 길을 물어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타는 듯한 볕을 피할 짙고 시원한 그늘이 있을 테지. 마침내 살았다는 안도감이 가슴에 차오르던 바로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홍콩에서 여름을 보내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얼음을 가득 넣은 커피를 마시며 북클럽 홈페이지를 새 단장하던 중, 문득 그 아득한 꿈이 떠오른 것은.

‘잠깐만, 그 낯선 땅이 두바이였잖아?’

순간 머릿속을 번뜩 스치는 생각이었다. 피부를 태울 듯 따갑게 내리꽂히던 햇빛, 앞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던 열기와 눈부심. 두바이에 와서 처음 겪어본 것이라 여겼던 그 감각은, 실은 오래전 꿈속에서 이미 겪어본 적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꽤나 황량해 보이던 그 풍경도 이제는 퍽 익숙하네. 목이 바짝 타들어가고, 오직 시원한 그늘만을 간절히 찾게 되는 그 본능적인 갈증까지도.

피식 웃음이 났다. 맙소사, 내가 두바이에 오게 될 것을 미리 알기라도 했다는 거야? 나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다시 꿈을 떠올려 보았다. 그래, 맞아. 그랬었지. 그 감각, 그 느낌, 그 기분. 모든 것이 여전히 이토록 생생하다.

내친김에, 이번엔 상상 속에서 그 나무를 향해 걸어가 본다. 덥다. 정말 덥다. 뜨겁다. 온몸이 바싹 타들어 가는 것 같다. 하지만 마침내 나무에 당도해 그 짙은 그늘 아래로 몸을 피하자, 금세 시원한 기운이 감돈다. 아, 살 것 같다. 순식간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나의 무화과나무 아래 앉았다.

무화과나무? 왜 하필 무화과나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켤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사실 독자들에게 친절히 설명할 길이 막막해진다. 무언가를 깊이 파고들어 말하기 좋아하는 나조차도 도무지 언어로 풀어낼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삶에는 종종 불쑥 일어나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꿈속의 그 시원한 그늘이 무화과나무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왜 무화과나무였는지를 논리적으로 해명할 재간은 없다.

그러니 그저, “나는 무화과나무 아래 앉았다”라는 단단한 명제 하나만을 쥐고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랬다. 실상 내 삶의 많은 궤적들은 이 무화과나무와 은밀히 연결되어 있었지만, 정작 나는 오랫동안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십여 년을 부지런히 포도밭과 포도나무 이야기만 해오던 와인 전문가인 내가, 갑자기 포도나무가 아닌 무화과나무 아래로 걸어 들어가다니. 그 와중에, ‘포도나무로 그 정도의 짙은 그늘을 만들려면 트렐리스(Trellis) 구조를 어떻게 짜야 할까’ 따위의 직업병적인 상념의 샛길로 잠시 빠져버렸다.

아니지, 고개를 가볍게 내저으며 다시 시원한 커피를 깊게 들이마신다. 생각이 복잡하게 엉킬 때, 커피만큼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는 위안도 드물다. 유리잔을 기울여 얼음을 찰랑, 흔들어본다. 차가운 소리와 함께 마음이 다시금 명징해진다.

여전히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나를 부른 그 나무는 분명 무화과나무였다.

그리고 그 무화과나무가 내겐 북클럽이었다. 그러니까 그 낯선 항구에 내려 간절히 닿고자 했던 그늘이 지금의 내겐, 다름 아닌 북클럽이었던 것이다.

10년을 살아온 홍콩을 떠나 낯선 땅에 정착한 내가 맞닥뜨린 깊은 향수병이었을지 모른다. 혹은 두바이라는 도시가 생각보다 내겐 더 낯선 곳이었는지도, 하필이면 이곳에 오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전쟁’이라는 운명의 소용돌이를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또 다른 이유가 숨어 있었는지도.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매사를 낱낱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나조차도 도무지 설명해 낼 재간이 없는 그런 일들이 삶에는 불쑥불쑥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다만 확실한 것은 나에게 일어난 모종의 ‘굴절’이었다. 나라는 빛이 궤도를 타고 똑바로 나아가다, 삶의 어느 지점에 놓인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그것이 투과 후의 미세한 굴절이었는지, 아니면 궤도를 완전히 벗어나 버린 반사였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그 희미한 꺾임 하나만으로도 이토록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올해는 유독, 내가 나 같지 않다. 내가 나에게도 조금 낯설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꺾임이었는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리라. 멀리서 지나온 나라는 빛의 궤도를 뒤돌아보며 비로소 ‘아, 그때 그 창에서 일어난 일이 이런 것이었구나’라고 조용히 말할 수 있을 뿐이리라.

그리하여 나는 결국 그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곳이 내 자리임이 너무나 분명했다.

‘결국, 다시 되돌아왔네.’

가만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주 오래전, 그 꿈보다 훨씬 더 오랜 기억 속에 난, 분명 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는데.

다시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다. 기분 좋은 산미가 혀끝을 감돈다. 이상하게도 요즘은 이렇게 쨍한 산미가 도는 커피가 참 좋다.

‘이제 여기서 무얼 해야 하지?’

생각하며 문득, 머리 위 나무에 매달린 무화과 열매를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이런… 이젠 포도를 지나, 무화과인가.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포도인지, 포도가 나인지, 내가 포도나무인지 포도나무가 나인지 헷갈릴 지경으로 나와 포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징처럼 단단히 엉켜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낯선 사막까지 굴절되어 온 내 앞에, 이제는 떡하니 ‘무화과’가 들이밀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열매 전문가’답게 무화과에 관한 책을 제대로 한번 읽어보기로 결심한다. 무화과에 대한 책이 과연 있겠냐고? 마흔 해 가까이 세상을 살아오며 내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세상은 넓고 ‘세상에 없는 책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곧장 아마존을 뒤졌다.

거봐, 내 그럴 줄 알았지. 내가 찾던 완벽한 책이 분명히 존재했다. ‘무화과 전문가’가 존재한다니까. 망설임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미국에서부터 바다를 건너 날아와야 하니 시간은 제법 걸릴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여러분, 때때로 우리 삶에는 소설가라도 이렇게 쓰진 않겠다 싶을 만큼 기막힌 우연이 겹치는 순간이 불쑥 찾아오는 법이다. 왜 하필 무화과나무가 그 막막한 사막 한가운데서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으며, 어째서 나는 이 새로운 북클럽의 이름을 진작부터 ‘오차드(Orchard, 과수원)’라고 지어두었던 것일까. 나는 왜 포도나무의 오랜 단짝 친구 격인 무화과와 이토록 오래전부터 친숙했고, 왜 하필 지금 그 오래된 꿈이 데자뷔처럼 떠오르고, 오래된 이야기들까지 하나둘 피어오르는 것인지. 거기에 더해, 대체 9월과 10월 북클럽 선정 도서들은 누가 내 머릿속을 몰래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지금 내 삶의 궤적과 이토록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지….

이걸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짚어 설명한다 한들, 아마 다들 온전히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그저 삶이 이따금 우리에게 던지는 이 치밀하고도 얄궂은 농담 앞에서, 내 복잡한 마음을 달래주는 건 내 앞의 이 산미 좋은 커피뿐이라는 얘기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이 사막 한가운데서 무화과나무를 붙들고 대체 무얼 하려는 건지. 다만 이 모든 우연과 호기심이 나를 자꾸만 이곳으로 이끄니, 일단은 이 자리를 지켜보려 한다. 그렇게 이 나무 아래 머물다 보면, 내가 왜 이 낯선 무화과나무 아래로 굴절되어 왔는지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그러니 이 복잡하고 유별난 우연의 연속은 이쯤에서 덮어두기로 하자. 당장은 미국에서 바다를 건너 날아올 그 두꺼운 무화과 책이나 느긋하게 기다려볼 생각이다.

서두르고 싶지 않다.

어쩌면 나는 하나의 긴 이야기가 되어가는 중인지도.

나도 아직은 모른다.

Monica Seokin Lee 이석인

Writer · Wine Expert · Dubai

『포도에서 와인으로』, 『포도빛 바람이 불어오는 곳, 부르고뉴』를 썼다. WSET Diploma를 취득했다. 서울과 싱가포르, 홍콩을 거쳐 두바이에 살며, 책과 와인, 예술과 도시를 읽고 그 사이에서 발견한 것들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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