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야기』가 불러온 세 권의 그림책
오차드 북클럽의 9월 도서는 『모모』의 작가로 알려진 미하엘 엔데의 환상동화 『끝없는 이야기』이다. 초등 고학년부터 읽을 수 있는 동화책이지만 7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이라, 긴 방학 동안 책을 읽고 북클럽 멤버들과 만났다.
『끝없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너무나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한 소년,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가 우연히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결국 위험에 처한 환상 세계를 구하기 위해 책 속으로 들어가 모험을 겪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소원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게 된 소년은 현실의 자신을 부정하며 스스로를 점점 더 멋지고 강하게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이런 소원들은 결국 자신의 자아마저 잃어버리게 만들고,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바스티안은 현실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이후 사람들의 꿈이 묻힌 광산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과 친구들의 도움을 통해, 환상 세계에서 생명의 물, 즉 사랑을 가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끝없는 이야기』는 한 소년의 환상적인 모험과 내면의 성장 이야기만으로도 강력한 몰입감과 깊은 감동을 주지만, 철학과 종교학, 신화에 정통한 작가가 작품 곳곳에 숨겨 놓은 상징과 은유, 삶에 대한 통찰을 곰곰이 생각하며 읽을 수도 있다.
여기서는 『끝없는 이야기』를 읽으며 떠올랐거나,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그림책 세 권을 소개한다.
01 『괴물들이 사는 나라』
모리스 샌닥 글·그림, 강무홍 옮김, 시공주니어
1963년 출간된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설명이 필요 없는 고전이자 베스트셀러이다. 그림책 속 아이 맥스는 늑대 옷을 입고 말썽을 피우다가 엄마에게 야단을 맞아 방에 갇히고 만다. 맥스가 갇힌 방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 숲이 되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곳에서 맥스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찾아 떠나고, 의기양양하게 ‘괴물 중의 괴물’이 되어 괴물들과 신나게 한바탕 ‘괴물 소동’을 벌인 뒤 집으로 돌아온다. 만족스러운 피곤함이 깃든 얼굴로 돌아온 방에는 따뜻한 저녁밥이 기다리고 있다.
700페이지가 넘는 『끝없는 이야기』를 40페이지 남짓으로 응축한다면 딱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짧은 분량의 그림책 속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끝없는 이야기』의 주인공 바스티안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학교 창고에서 혼자 외로이 책을 읽는 모습, 환상 세계의 인물인 아트레유를 동경하며 그의 모험에 몰입하는 모습, 환상 세계를 구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는 모습, 마지막으로 자신의 참된 소원을 깨닫고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모습이 겹쳐 보인다.
두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끝없는 이야기』의 마무리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표지와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또 다른 이야기가 되길 기다리는 『끝없는 이야기』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정박해 있는 배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괴물이 그려진 그림책의 표지는 우리에게 다정하게 손짓하며 속삭이고 있다.
‘언제라도 괜찮아. 너를 기다리고 있어.’
2.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미하엘 엔데 글, 프리드리히 헤헬만 그림, 신동화 옮김, 비룡소
“너도,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림자니?”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은 미하엘 엔데가 쓰고 프리드리히 헤헬만이 그린, 환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린이라면,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의 중심인물인 오필리아는 할머니다. 오필리아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연극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던 오필리아는 무대 맨 앞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상자에서 작은 목소리로 배우들의 대사를 속삭여주는 일을 하며 늙어갔다.
시대가 변해 더 이상 사람들이 극장을 찾지 않게 되자 오필리아는 극장에 홀로 남게 된다. 그런 오필리아에게 어느 날부터 갈 곳 없는 그림자들이 찾아오고, 오필리아는 그림자들을 모두 품어 세상의 위대한 희극과 비극을 알려주며 매일 그들만의 공연을 열었다. 하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으로 오필리아와 그림자들은 작은 극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림자들의 아이디어로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을 만들어 온 세상을 누비며 공연을 한다.
어느 날 오필리아는 눈보라 속에서 다른 그림자보다 훨씬 어둡고 거대한 그림자를 만나게 된다. 오필리아는 그 그림자의 이름도 묻지 않고 품는다. 그리고 눈을 뜬 오필리아는 젊고 맑은 눈으로 새롭게 세상을 보게 되고, 화려한 옷을 입은 아름다운 형체들에 둘러싸여 멋진 극장으로 인도된다.
작고 늙은 오필리아는 갈 곳 없는 그림자를 오는 대로 품는다. 책에는 갈 곳 없는 그림자들의 이름이 나온다. ‘개구쟁이그림자’, ‘두려운어둠’, ‘홀로외따로’, ‘병든밤’, ‘다시없음’, ‘공허함의무게’ 같은 것들이다. 이 이름들로 우리가 살면서 외면하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 상황, 모습들이 그림자로 형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필리아는 그런 소외된 것들, 외면당한 것들을 품어 예술로 승화시키고, 구원받은 그림자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채를 가지게 된다. 마치 진주조개처럼.
다시 책장을 앞으로 넘겨 첫 장면으로 돌아오면, 배우들의 대사를 읊어주기 위해 작은 상자에 들어가 있는 오필리아의 모습이 달리 보인다. 쪼글쪼글한 얼굴에 앙다문 단단한 입, 살짝 올라간 다정한 입매, 정면을 바라보는 깊은 눈. 오필리아의 초상화로 보이는 이 장면을 보고 있자면 내가 오필리아를 보는 것인지 오필리아가 나를 보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 깊은 눈이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있니?’ 묻는 것 같다.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독일판 · Illustration by Friedrich Hechelmann · Thienemann-Esslinger Verlag
3. 『슬픈 란돌린』
카트린 마이어 글, 아네트 블라이 그림, 허수경 옮김, 문학동네
『슬픈 란돌린』은 『끝없는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긴 허수경 시인이 번역한 그림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어린이 성폭력, 더 이상 쉬쉬하지 마세요!’이다.
그렇다.
『슬픈 란돌린』은 어린이 성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그림책이다.
‘란돌린’은 브리트의 강아지 인형으로, 브리트가 털어놓는 나쁜 비밀을 듣고도 힘들어하는 브리트를 도와줄 수 없어 슬퍼한다. 란돌린은 간절히, 아주 간절히 브리트를 돕고 싶어 하다가 기적적으로 브리트에게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정말 나빠. 너에게 아픔을 주잖아.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돼! 누구도, 누구도, 그 누구도 너에게 그래서는 안 돼!”
“나쁜 비밀을 털어놔야 해.”
브리트는 란돌린과 누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프레리히 아줌마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림책 속에는 성폭력 장면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어린이가 보는 책이기에 어설프게 상징적으로 묘사하거나 에둘러 표현하지 않았다. 어린이가 어떤 상황이 위험한지 정확하게 알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책이라는 갈래에 어린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될 정도의 무거운 내용이 담겨 있어, 어린이에게 소개하기 주저될 수도 있다. 책을 번역한 허수경 시인도 ‘번역을 하는 동안 많은 생각이 오갔다’고 밝혔다. 하지만 ‘쉬쉬하며 문제를 덮어두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은 만들어졌다’며, ‘감추어진 문제를 밝은 곳으로 끌어내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번역을 마쳤을 것이다. 저 멀리 밀어내지 말고, 양육자가 먼저 이 책을 읽어보고 어린이와 이야기를 나눠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