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동경의 그림자 — 에곤 쉴레

만 4세에서 5세로 넘어가고 있는 아들과의 대화는 주로 방귀, 똥, 아니면 “내 총을 받아라, 두두두두!”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장난꾸러기인 아들이지만,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는 참으로 스위트합니다. 누가 들을까, 작은 손을 엄마 귀에 대고는 소곤소곤 말합니다.

“나는 가족 중에 엄마가 제일 좋아! 제일 사랑해!”

“엄마도 아들 사랑해. 아빠도 똑같이 사랑하자. 안 그럼 아빠가 슬퍼할 텐데”

“아니야 나는 엄마가 제일 좋아! 제일 사랑해!”

그래, 이 맛에 애를 키우지. 세상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빠한테도 저런 말을 해주면 남편이 정말 행복해할 텐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들어 부쩍 엄마만 찾는 아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심리학 개론서에서 봤던 프로이트가 떠오릅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리비도(Libido, 성적·본능적 에너지)의 이동에 따라 인간의 심리성적 발달단계를 다섯 단계로 구분했습니다. 그중 만 4세에서 6세 사이를 ‘남근기(Phallic Stage)’라고 부르는데요. 리비도가 성기에 집중되면서 성차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나는 시기입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이 시기의 남자아이는 엄마에게 강한 애착과 독점욕을 느끼는 동시에 아빠를 경쟁자이자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프로이트는 아이가 이러한 갈등 속에서 아빠의 모습과 성역할을 ‘동일시(Identification)’하면서 콤플렉스를 극복해 나간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이 과정이 이후 아이의 성역할 정체감과 대인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세계적인 화가들에게도 아버지는 이처럼 동경과 동일시의 대상이었을까요?


아버지의 세계를 그리던 소년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를 아시나요? ‘에곤 쉴레’ 하면 왜곡되고 비틀린 몸, 나체의 인물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거친 스케치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는 왜 그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요?

에곤 숼레는 1890년, 오스트리아 툴른에서 아돌프 쉴레와 마리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국영철도 툴른 역의 역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기차에 관심을 갖게 되죠. 그런데 아버지가 역의 역장이라니, 쉴레에게 아버지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보였던 쉴레는 기차를 그리는 데 빠져듭니다.

에곤 쉴레(Egon Schiele), 《기관차(Locomotive)》, c. 1900, 개인 소장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어린 시절 기관차 드로잉, c. 1900, 빈 박물관(Wien Museum) 소장

쉴레가 10살경에 그린 기차 스케치입니다. 세부적인 묘사가 정밀하게 잘 되어 있고, 공을 들여 그린 흔적이 엿보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어린 쉴레에게 기차는 단순히 좋아하는 대상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역장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동경도 그 안에 담겨 있지 않았을까요.

동경하던 아버지, 그리고 그림자

쉴레에게는 사산된 두 명의 형제가 있었고, 두 명의 누나와 여동생 한 명과 함께 자랐습니다. 그중 큰누나인 엘비라는 10살이 되던 해에 뇌염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는 아버지가 앓던 매독과 관련된 합병증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죽고 나서야 자신이 매독에 걸렸다는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함께 자란 다른 자매들은 다행히 건강하게 성장했고, 유일한 아들이었던 에곤 쉴레에게 아버지는 기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며 유일하게 미술에서만 좋은 점수를 받아오는 아들이 못마땅했던 아돌프 쉴레는 아들의 그림을 찢거나 불에 태워버리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선망하던 아버지의 이런 모습에 쉴레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동경하던 아버지처럼 멋진 남성이 되고 싶은 마음과, 정작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함께 있지 않았을까요.

에곤 쉴레(Egon Schiele), 《자화상(Self-Portrait)》, 1911,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소장

에곤 쉴레(Egon Schiele), 《여성 누드(Female Nude)》, 1910

에곤 쉴레(Egon Schiele), 《앉아 있는 남성 누드(자화상)(Seated Male Nude (Self-Portrait))》, 1910, 레오폴트 미술관(Leopold Museum) 소장

쉴레는 많은 누드화를 그렸는데요. 어떠신가요? 선정적이거나 또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고 아프거나 불편해 보이지 않으신가요?

에곤 쉴레가 살던 당시 빈에서는 성매매가 흔했고, 매독 역시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시대를 살았던 데다, 동경하던 아버지가 매독에 걸렸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가족에게 드리운 고통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쉴레에게 성은 생명 탄생의 신비나 쾌락과 아름다움의 상징이라기보다 고통과 죽음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비추어 본다면, 어린 시절 동일시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라는 남성상(Father figure)이 무너지는 경험은 쉴레에게 깊은 내적 충격을 남겼을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성(Sexuality)은 아버지의 질병과 연결된 고통과 죽음의 상징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림 속 인물들의 신체 일부는 화면 밖으로 잘려 있거나 얼굴이 뭉개진 듯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쉴레 자신에게도 이 몸들을 바라보는 일이 편안하지만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마주하기 어려웠던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그림 속에 드러난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그 비틀린 신체 속에서도 인물들의 눈빛만큼은 살아 있습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림 속 인물의 눈빛을 마주하자면 슬며시 불편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아버지의 죽음, 화가의 시작

다시 어린 시절의 쉴레로 돌아가 볼까요. 고등학교가 없는 지역에 살고 있던 쉴레는 어머니의 고향인 크렘스의 친척집으로 가 이공계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 무렵 아버지 아돌프 쉴레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가족 모두가 에곤 쉴레가 있는 크렘스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아돌프는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절망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매독으로 인한 신경증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고, 전 재산이었던 철도 채권들마저 불태워버립니다. 결국 에곤 쉴레가 14살이던 어느 날 아버지는 신경성 매독에 의한 진행성마비로 사망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집안 경제사정이 많이 어려워지고, 삼촌과 어머니가 쉴레를 돌보게 되는데요. 이것이 참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림을 완강하게 반대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쉴레는 비엔나에 있는 예술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그토록 원하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에곤 쉴레.

이후 그의 삶은 어땠을까요?

Yerim Choi 최예림

Counseling Psychologist · Hong Kong
꾸준히 마음을 배우는 상담심리사입니다. 작품과 역사 속 숨은 이야기를 탐구하며, 운동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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